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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창업(상) 추적! 벤처창업동아리 101명(중앙일보 특집기사) - 기업가정신 세계일주

송정현 Budher Song 2011. 9. 7. 09:51
기사 출처 :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1&Total_ID=6127771

창업동아리 출신의 행보를 추적하는 것은 꽤 신선한 기획이였다. 10년정도 지났는데, 101명에서 13명이 아직 창업가로서 활동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확률이라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생존률 6~7% 이하인데 반해, 약 2배 정도의 생존률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창업동아리 출신들의 생존률이 일반 창업가보다 높다고 판단된다.

[창간 기획 - 청년 창업, 실패를 허(許)하라] <상> 추적! 벤처 창업 동아리 101명

[중앙일보] 입력 2011.09.05 01:18 / 수정 2011.09.05 16:26

벤처 패자부활전 없는 한국 … 빌 게이츠 꿈꾸던 90년대 벤처 동아리 101명 중 13명만 남았다

4년 전 빌 게이츠가 극찬했던 그들은 지금 … 2007년 6월 26일 미국 워싱턴주 레드먼드의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에 초청된 이매진컵 한국 대표 세종대 엔샵605팀의 임찬규(맨 왼쪽), 임병수(왼쪽에서 둘째)씨가 시청각 장애인용 문자인식 장치인 핑거코드를 시연하고 있다. 당시 빌 게이츠(맨 오른쪽) 전 MS 회장은 이들의 작품을 보고 “환상적이다(It’s fantastic)”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들은 8월에 열린 세계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핑거코드는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받지 못하고 특허 등록 기간도 놓쳐 사장(死藏)돼버렸다. 엔샵605 네 명의 멤버는 뿔뿔이 흩어져 취업을 했거나 대학원 입학을 준비 중이다. [중앙포토]

외줄 타기 청년 벤처 창업

벤처 창업 동아리의 선구자 KAIST의 ‘KB클럽’이 결성된 때는 1996년. 이듬해 서울대에서 ‘벤처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숭실대의 ‘시너지’와 광운대의 ‘fovu’는 98년과 99년 문을 열었다. 본지 취재팀은 학생 신분으로 한국판 빌 게이츠를 꿈꿨던 이들 4개대 동아리 1~3기 멤버 101명의 10여 년간을 추적해 봤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이들이 들려준 삶의 궤적은 ‘창업 말리는 사회’에 대한 생생한 고발이었다. 

  KAIST 전자공학과 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KB클럽은 90년대 말 대학생 창업 붐을 이끈 주역이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컨설팅업체 ‘위더스’, 정보통신기업 ‘하빈’과 같은 초기 벤처 창업도 활발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명맥이 끊겼고 지금은 회원들끼리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1기 회장 김도완(KAIST 전자공학과 졸업)씨는 지방에서 중·고교생 대상 입시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두 차례 창업으로 진 10억원이 넘는 빚을 갚으려고 사교육계에 뛰어든 지 7년째. 그는 “한국은 젊은 날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라고 못 박았다. 정부의 전시행정과 복잡한 규제도 걸림돌이었다고 했다.

  “공장 하나 설립하는 데 서류가 70개 필요했습니다. 로비를 안 하면 설립시기가 몇 달씩 지연되기도 했죠. 20대 청년이 기술과 경영을 모두 감당하는 것은 무리인데 사회가 전혀 돕지 않았습니다.” 그는 “15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창업을 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같은 1기 출신인 홍모(40·KAIST 기계공학 졸업)씨는 한 차례 창업 실패 후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근무 중이다. 97년 군 제대 후 돌아온 캠퍼스에는 벤처 열풍이 한창이었고 홍씨는 친구 셋과 의기투합해 기술컨설팅업체를 세웠다. 에인절투자자와 정부로부터 투자도 받았다.

 “액수는 1억여원으로 크지 않았지만 누군가 우리를 인정해 준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죠.”

 그러나 사회 경험이 없는 대학원생들이 회사를 꾸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투자자와의 문제로 씨름하는 사이 매출은 떨어지고 자금난은 급속히 찾아왔다. 2001년 홍씨에게 남은 것은 1억원이 넘는 빚과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뿐이었다.

 “30대 초반이라 타격이 컸습니다. 신용 문제가 있으니 취업도 안 됐습니다.”

 다행히 2년 뒤 학교 선배의 배려로 현재의 회사에 합류하게 됐다. 당시 동료들 소식은 간간이 전해 듣는다. 다들 신용불량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했다.

 “젊은 시절 창업하는 이는 외줄을 타야 하죠. 순수 투자금보다는 인적 보증으로 채무를 지는 게 대부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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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에 응한 이들 창업 선구자의 33.4%는 ‘창업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자금난·투자 저조’를 꼽았다. 투자가 저조해 빚을 져야 하고, 이것이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는 위태로운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울대 창업 동아리 벤처네트워크 2기인 권현진(33·서울대 재료공학과 졸업)씨는 창업으로 진 빚을 입시학원 강사로 일하며 갚았다. 그는 신입생 때 온라인교육솔루션업체 ‘아이틴’을 세웠다.

그러나 제품의 우수성과 영업은 별개였다. 2억원의 투자금은 고스란히 빚이 됐고 학원 강의를 뛰며 이를 갚아야 했다. 그는 “창업자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하다”고 토로했다. 이후 대기업에 취업하기도 했던 그는 2년 전 다시 창업에 도전했다. 그가 세운 교육콘텐트업체 네이처릭스는 지난해 흑자로 돌아서며 성장하고 있다.

 “이제 가능성이 보이는 단계입니다. 초창기 기업도 좀 더 쉽게 투자받을 길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실패를 자산으로 보존하라

취재팀이 확인한 벤처 동아리 13명은 지금도 ‘창업자’로 살고 있다. 이 가운데 놀라운 성과를 이룬 이도 있다.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 1위 게임빌의 창업자 송병준(서울대 벤처네트워크 1기 회장) 사장이 대표적이다. 한 번 창업을 경험한 이는 계속 창업한다는 특징도 나타났다. 창업 경험자 32명 중 2회 창업한 이는 12명, 3회 이상 창업한 이도 6명이나 됐다. 이른바 ‘창업 DNA’가 확인된 것이다.

벤처 네트워크 1기 석윤찬(40·서울대 전기공학 졸업)씨는 2009년 세 번째 회사인 소셜커머스 공동구매업체 인포니들을 창업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창업부터 코스닥 상장, M&A까지 거쳐 본 것이 나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십억원까지 채무도 져 봤다. 힘든 시기를 겪고 나면 실패의 원인을 배우고 노하우를 얻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들 창업 선구자들의 바람은 창업 DNA가 소멸되지 않고 계승되는 것. 그러나 후배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심여린(31·서울대 의류학과 졸업) 스픽케어 대표는 얼마 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현재 학생들의 분위기를 단면적으로 실감했다.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해 주고 싶은 마음에 강연에 응했는데 막상 학생들은 “어떻게 학생 때 창업할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오히려 의아해했다는 것이다. 심 대표는 “대학이 전부 취업 사관학교로 변해 버린 것 같아 씁쓸했다”고 털어놨다.

 벤처캐피털 투자팀장인 숭실대 시너지 2기 출신 손민호(32 )씨는 “요즘은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조차 이를 취업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탓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권했다.

 석윤찬 인포니들 대표도 “5%의 성공한 창업자가 사회를 발전시킨다. 실패한 95%를 보호해야 이들 안에서 5%의 성공한 창업자가 또 나올 수 있다.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선 M&A로 벤처 갑부 … 한국선 먹튀 비난”

벤처 선순환 생태계가 없다


창업 경험이 있는 동아리 멤버 출신들이 세운 벤처업체 중 몇몇은 한때 수백억원 규모의 매출을 냈다. 그러나 ‘창업→투자→성장→인수합병(M&A)→재창업(투자)’의 선순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KAIST 전자공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기술벤처업체를 9년째 운영하고 있는 K씨(42)는 “국내에는 윈-윈 하는 성공적 M&A 사례가 별로 없다”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국내 대기업들이 기술력 있는 중소업체를 M&A하기보다 싼값에 기술과 인력을 빼 가거나 용역 개발을 맡기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에 납품하지 않으면 생존이 안 되는 것이 국내 기술벤처의 현실이다. 대기업들이 외국과의 기술 경쟁에 거액의 돈을 쓰면서 국내 기술 생태계 조성에는 노력하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이는 자생력 부족으로도 이어졌다. 창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정부 주도로만 치우쳐 있고 민간 차원의 투자와 창업 조언 이 부족한 실정이다. 숭실대 창업 동아리 시너지 출신 이호재(33·숭실대 벤처중소기업 석사)씨는 이같이 설명했다.

 “창업 1세대가 밑거름이 되고 다음 세대가 경험을 흡수해 발전해야 하는데 그 시스템이 아직 미완입니다. 노하우 축적이 안 돼 비슷한 실패가 되풀이되는 격이죠.”

 그는 20대 초반부터 네 번의 창업을 경험하고 현재 건설회사에 재직 중이다.

 인터넷쇼핑몰을 열었다가 지금은 회사원으로 있는 광운대 fovu 1기 출신 채영선(37·광운대 전자공학과 졸업)씨는 “내 사업에 대해 검증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게 힘들었다. 여기저기 물으면 그냥 안 좋다는 말만 했다. 왜 안 좋은지, 뭐가 필요한지 얘기를 듣지 못했다 ”고 말했다.

 서울대 벤처네트워크 2기 출신 조모(32·서울대 전기공학 졸업)씨가 창업의 꿈을 접은 것도 이 때문이다. 창업해도 지속적인 투자·관리가 안 돼 실패하는 동료들을 여럿 보고서는 대기업 입사를 택했다고 했다. 그는 “에인절투자와 창업 인큐베이팅이 약해 벤처 자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창업에 성공하고 M&A로 부를 창출한 벤처 갑부가 많아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이들이 에인절투자자로 변신해 후배 창업자를 키워 선순환이 됩니다. 하지만 한국은 M&A로 돈을 쥔 이들을 ‘먹튀’라고 비난하는 게 국민 정서죠.”

 KB클럽 1기 출신 이대현(41·KAIST 전기 및 전자공학 박사) 한국산업기술대 게임공학과 교수는 “ 창업지원제도의 경우 그 자체는 좋으나 정부에서 실행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창업 지원이 공무원의 업무가 되면 사후관리가 안 된다. 민간에서 창업 아이템을 평가하고 지속적으로 멘토링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특별취재팀=김기환·심서현·채승기 기자, 권재준(한국외대 법학과)·김승환(고려대 경영학과)·최나빈(고려대 노어노문학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