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좋은 기회를 찾고 있다. 우리가 매일 찾아 해매이는 기회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김광규 시인의 '생각의 사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이 시를 정말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되었다.
기업가정신 세계일주 러시아 지역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양대학교 김상현 교수님이 들려주셨던 시다. 이 시를 처음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는 듯 한 느낌이였다. 그는 4시간 동안 러시아에 관한 정말 액기스에 달하는 둔탁한 충격으로 몹시 어리둥절했지만, 이 시만큼 기회의 원천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없다.
생각의 사이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스노우라는 사이트인데, 숙명여대에서 운영중인 아주 훌륭한 사이트다. 세계 유수의 강의 동영상을 모두 한글로 번역해서 제공하고 있으니 나처럼 영어가 잼뱅이인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훌륭한 강의를 볼 수 있다. SNOW를 기획하고 만든 숙명여대 관계자분들의 선견지명에 감탄과 뜨거운 갈채를 보내고 싶다. 고맙습니다!
#SNOW의 오픈 코스
숙명여대가 제작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유튜브 등에서 공개된 훌륭한 동영상 자료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각 카테고리별로 제공 중
The entrepreneur is a man who stand on border line.
Entrepreneur(창업가)는 늘 경계에 서 있다.
경계 [명사] (境界, border, boundary)
1.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 2. 지역이 구분되는 한계.
경계라 함은 무엇과 무엇이 마주치는 면이나 점, 아니면 그 이상의 차원을 포함 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복수의 무엇을 구분짓는 것 이외에 나에게는 좀 더 색다른 의미로 느껴진다.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곧 무엇과 무엇 사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방적으로 한 쪽에 속해있지는 않는 것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사실 불안과 위협 등 늘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기도 하며, 그 경계는 시시각각 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역동적이다. 그 변화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외부환경의) 균형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 경계에 서 있는 자들의 인생(Entrepreneurial Process)에서 이들이 해야 할 핵심역량일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급변하고 역동적인 경계에서 서 있다는(stand) 표현은 부적절한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 어떤 역동성을 가진 것도 미분하거나 찰나의 순간은 정지, 서 있는 것 아닌가.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은 본질적으로 결코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 해당 표현은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경계에 서 있는 것은 늘 분쟁과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긍정적인 의미도 많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객관성과 상호보완 / 중계 / 창구의 역할 등의 여러가지 다양한 기회가 존재한다. 그것은 어느 한 쪽에 속해 있거나 그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Entrepreneur는 그 경계에 서서 주변 상황의 필요욕구를 충족시켜줄 것을 끊임없이 찾고, 마치 세포가 분열하듯이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가치를 경계에서 창출해낸다.
그 경계는 안정한듯 불안정한듯 늘 변화하고는 있지만 늘 다른 이해관계와도 맞물려있기 때문에, 끝이 없는 인간의 욕구보다는 그 변화나 움직임이 둔화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불일치(不一致, inconsistency)가 나타난다. Entrepreneur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 경계에 서서, 어떤 영역에서 강력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불일치가 발생하는지 유의 깊게 살피고 발견해야한다. 그 불일치가 강력하면 강력할 수록, 지속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것은 더이상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라 훌륭한 기회(機會, opportunity)인 것이다. 그 문제를 발견하려면, 무엇의 깊숙하게도 들어가 보기도 해야하고 무엇의 경계(한계)에도 수없이 들락거려야 한다.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야 어느 영역이든 고개만 돌리면 그 속을 들여다 보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 무엇의 영역에서만 생활하던 사람들은 그 경계를 맞닿았을 때, 두렵고 불안에 휩싸여서 쉽게 그 경계를 넘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해당 문제를 당연하고 익숙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개인이나 기업 모두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경계)를 명확하게 알고 늘 그 주변을 서성이며 살피며 확장해야 한다. 때로는 여러 주변의 이해관계에 부딪혀서 막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주변의 이해관계가 잘 풀려서 갑작스럽게 어마어마한 영역을 단번에 흡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하나하나 넓혀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생존과 성장을 하기 위해서 변화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법칙일터. 그렇기 때문에 Entrepreneur는 제 자신의 것이든, 다른 이들의 것이든, 늘 어떤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성장과 생존이라는 것은 아마도 그 무엇의 경계(한계)를 알고 그것을 뛰어넘어야 가능한 것일게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서야 어찌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가 있을 것이며, 그 한계를 넘지 않고서야 어떻게 성장과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잡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창업자 또는 예비창업자의 노력과 과정이 묻어나오기는 하지만.. 훌륭한 사업계획 그 자체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계획에 대한 심사에 편중된 경향을, 과정에 대한 심사로 많은 부분 전향을 해야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심사의 시점을 기존의 단기/일회성 평가가 아닌, 장기/지속성 평가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기존처럼 단 한 번의 5분~30분 사업계획서를 보고 창업가의 발표를 듣고 이를 평가하여 수상자를 가리는 행사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사업계획서를 보고 평가하고난 뒤, 그 계획을 수행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다시 평가를 해야 진짜 창업경진대회가 아닐까 싶다.
창업은 '실천'이라고 다들 주장하고 있지만, 창업경진대회를 운영하는 주최측에서 그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왜냐하면, 기존의 창업경진대회는 '실천'과 '공평한 기회'를 담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음. 사업이라는 것 자체에 공평함을 내세운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아이러니일 수 있겠으나, 적어도 경진대회라면 각자 자신의 아이템에 대한 실전사업계획을 세워보고 그것을 어떻게든 실현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조금은 사업계획에 대한 불공평함은 사라지지 않을까? 단기/일회성으로 평가를 하는 경우에는 시기야 어찌되었건 오래 많이 준비한 팀은 그 실천의 성과가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거나 훌륭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심사를 나가보면, 오랫동안 준비한 팀은 그렇지 못한 팀보다 실제로 대부분 적은 점수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먼저 출발한 것처럼, 공평한 기회의 측면에서는 다소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중에 누가 키가 크고 체력이 좋은지를 가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창업분야라도 경진대회라면 지금보다는 공평한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각자 자신이 잘하고 하고 싶은 것을 준비해서 해보게끔 한다면 그래도 불공평한 부분은 많이 해소되리라 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장기라고 하더라도 얼마나 시간을 더 줄 수 있겠는가.. 짧으면 몇 일에서 길면 몇 달 정도이겠지만, 그 기간동안 만이라도 각자 자신의 계획 중에서 뭔가 진행해볼 수 있는 것을 실천해보고 그로부터 또 다른 경험과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공평함'보다는 '실천'이다. 사업에서의 공평함은 어쩌면 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어설프고 억지스러운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실천을 위한 공평함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정말, 실천이라면 다르다.
창업은 '실천'인 만큼 경진대회에서도 그것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존의 경진대회에서는 실천했던 것에 대한 평가이다. 이미 과거인 것이다. 노력의 흔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몇 분 정도의 제한된 시간 속에서 창업가의 이상과 그 실현 과정을 제대로 평가하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기존에 달성했던 성과는 잠시 접어두고, 향후의 계획 중에서 자신들이 실제 나아가야 할 길을 실제로 해보라고 동등한 기회를 주고 난 뒤 그들의 실현과정을 평가해본다면 이는 상당히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것이 실제 사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의미있는 효과를 수행자들에게 선사할 것이라 본다.
이미 딱딱하게 굳어있는 실천 결과를 평가하는 것보다, 지금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장의 모습에서 이들의 기업가정신과 창업과정을 평가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의미에서의 창업 경진대회가 되지 않을까!?
얼마 전에 진짜 창업경진대회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기존의 것들과 무엇이 다른지는 찾아볼 순 없었다. 무엇이 가짜고, 무엇이 진짜인가.
창업/사업은 실천으로 인한 끊임없는 학습의 과정이다. 매번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면서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정말 기업가정신을 확산시키려면, 끈기와 인내와 같은 요소부터 경험하게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석학들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강한 기업이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기업이 강한 기업이라는 것을. 죽지 않고, 그만 두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행복'까지 잡을 수 있다면, 말 그대로 대박 인생일 것이다. 젊은 청년들에게 부족한 것은 겁 없는 무모함이나 도전정신보다는 끈기와 인내와 같이 녹록한 연륜이 묻어나야 피울 수 있는 꽃이리라. 이는 실제 나의 연구논문에서도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가 있다. 기업성과와 기업가정신에 긍정적인 요인은 실제 실천과 깊이 관계된 학습요인들이였다. 예를 들자면, 인내와 끈기와 같은 세부 요인들이 혁신성과 진취성에 매우 강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
Entrepreneur's Diary #045 제 45화
청년들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자기확신
(사진 : 2011년 12월 YES리더 시상식 가는 길, 2:8 가르마를 하고)
올해는 분주하게 새해 계획이니 뭐니 세우지는 않았다.
귀국한 뒤로 이미 나 자신도 모르게 상세하게 다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구체적이진 않지만, 죽기 직전까지의 내 모습을 약 10년 단위로 그려놓았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10대에 뜻을 세우면서 60대까지의 생의 목표를 세웠던 것이 떠오른다.
참 대단한 포부를 지닌 그다.
그에 비하면 15년 정도는 내가 늦은 셈이지만, 어짜피 그와 나는 궁극의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이니, 늦고 빠름은 그저 인지(認知)의 장난일 뿐이다. 우리의 관심은 업(業)을 이루고, 세상과 통달(通達)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이 빠르고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자기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존재에 그 자체에 대한 탐구
우리는 흔히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이야기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가 그 어떤 이상 야릇한 상상을 하는지는 오로지 자신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 한번이라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황당할지 모르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는가?
아마 생각보다 많이 해봤거나, 아니면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꼭 해보기를 권유하고, 이미 많이 했던 사람들도 끊임없이 하길 권유하고 싶다.
나는 지금 12년째 질문과 답을 하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늘 새롭다. 조금씩 답도 바뀐다. 그렇게 묻고 답해오고 있음에도 그것이 진정한 '나'라고 선뜻 이야기하기가 참 힘들다.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믿음은 결국 나를 살펴봄에서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 묻고 답하다보면 그것이 자연스레 이야기가 된다. 그 대화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저 끊임없이 확인해가는 과정이다. 그것이 결국 쌓이고 쌓여서 자존감을 형성하는 것.
#존재의 목적에 대한 탐구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인을 하면은, 이제부터 조금은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존재의 확인과정에서 흔히 했던 질문은 What을 사용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부터는 Why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나는 왜 사는가?', '내가 이걸을 왜 해야하는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목적에 대해 질문을 해야한다.
존재 자체는 알았지만, 존재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 우리는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기위해 밥을 먹을까?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 도대체 나와 당신은 왜 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왜 숨을 쉬어야 하는가?와 같은 똘아이 같은 질문을 해보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은, 자신이 걷고 싶은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찾게 된다. 그 질문에 답을 찾는데, 나는 11년이 걸렸다.
이제부터는 그 길이 곧 자신이 되고, 그 자신이 곧 흐름을 만드는 존재가 되도록 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인간은 무한함과 나약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결정하는 존재. 하지만, 자신의 존재와 그 목적에 대해 뚜렷한 답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훌륭하다고 생각드는 것은 우리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발견이자, 앎이다. 그것은 얻어지는 것,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억겁의 시간과 노력과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선물은 바로 얻은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어지고 얻은 것, 그 자체만으로는 온전한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불일치(不一致, Incongruity)에서 불만(不滿, Dissatisfaction)이 야기되고 기회(機會, Opportunity)가 찾아오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지고 얻는 것은 선택(選擇, Choice)을 하는 것이지만,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결정(決定, Decision)을 하는 것이다. 그 기회들 역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결국 그 기회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은 선택이 아닌 우리의 결정에서 온다.
매일 수십번 그 갈림길 앞에 선다. 어떤 것은 숨이 막혀 어지러울 정도로 어려운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볼 필요도 없는 갈림길이 있기도 하다. 그 수많은 고민과 갈등은 어쩌면 우리의 무한함과 나약함의 기로(岐路, Crossroads)의 나선 위에 있는 것일지도.
그 무한함과 나약함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번외 - 가르마 (가르마 : [명사] 이마에서 정수리까지의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갈랐을 때 생기는 금)
얼마 전부터 2:8 가르마를 타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느껴진다.
이건 내가 그렸던 모습 중 일부인데, 아직 나의 생각의 길과 행보의 길을 만들기도 전에 정수리까지 길을 하나 내어 본 거다.
가르마를 했다는 것은 내 30대의 어떤 선언이나 결심과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발걸음을 쫒아가다보면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상상하고 꿈꾸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내가 뒤를 돌아봤을 때, 거기에 나의 길이 있겠지.
삐딱하게
강산에
너무 착하게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너무 훌륭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TV를 봐도 라디오를 켜도
삐따기의 모습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네)
있는 그대로 얘기할수 있는 삐따기
조금 삐딱하면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네)
조금 삐딱하면 (손가락질 하기 바쁘네)
훌륭한 사람 착한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바르다고 하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저물어 가는데
삐딱 하게 삐딱 하게
삐딱 삐딱 하게 삐딱 삐딱 하게
삐딱 하게 삐딱 하게
그가 서 있는 땅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네
가끔은 삐딱한 시선이 나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남들과 다른 시선을 말한다.
우리는 일부러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에게서 멀어지거나 삐딱하게 봐야할 필요성이 있다. 마치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세상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그 시선의 차이가 바로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그 시선은 곧 재 인식의 과정을 불러 일으키고, 재 인식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세잎클로버와 같은 일상의 즐거움이자 축복이다.
그 발견을 계기로 치열함 끝에 사고의 전환(또는 인식의 재구성)을 낳을 수 있다. 그것은 사업을 하기 위한 '현실적 기회의 창조'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은 사업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는 창조의 과정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피카소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피카소는 이런 면에서 정말 뛰어난 작가이다.
(나는 그를 우리 피형, 또는 피작가라고 부른다. ㅋㅋ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전 세계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의 작품을 다 둘러보고 있어서 행복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일면식을 가졌으니, 편안하게 '우리 피형'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 ㅋ
이 모든 과정은 바로 삐딱한 시선이 좋은 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닳아야 한다.
삐딱한 시선. 그것이 주는 일상의 기회. 그것은 빠르고 깊숙하게 시장으로 파고 들 수 있는 파격적이고 대중에게 친숙한 기회이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이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그 사실로 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처음으로 국내 인터뷰에 참석하는 것이기에, 무척 설레이기도 하고, 혹시나 준비가 미흡하지 않았나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팀장님, 김진영 양, 유경수 군과 함께 유성구 용계동에 있는 진미식품의 본사로 향했다.
올해로 40세인 송상문 대표님은 생각보다 무척 젊은 외모를 가지고 계셨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이런 상투적인 인사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나는 '기업가정신 세계일주'의 출국에 맞춰 작은 테마로 '기업가정신 국내일주'를 진행하기로 하였기에, 이번 인터뷰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두 가지의 관점을 가지고 인터뷰에 임했다.
하나는, 우리 '기업가정신 세계일주'팀의 송정현 팀장님이 어떻게 인터뷰를 진행하는가 였고,
다른 하나는, '송상문 대표님'의 기업가적인 마인드와 진미식품에 대한 일화를 듣는 것이었다.
준비해간 질문지가 무색할만큼, 팀장님은 인터뷰를 어느 형식에 구애받지않는 형식으로 진행해나가셨다. 인터뷰의 간단한 테마만 설명하고, 나머지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인터뷰의 시작은 무거운 주제로 시작했다. 진미식품이 지난 60여년간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 대한 질문에 대한 송상문 대표님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to be Continue.....
(주)진미식품 송상문 대표이사 인터뷰 준비과정
글 : 기업가정신 세계일주, 유경수
1월 26일,
네번째 인터뷰에 참석했다. 오늘은 그 준비 과정을 적어보고자 한다.
이번 인터뷰는 대전의 장류 대표기업 (주)진미식품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인터뷰가 있기 얼마 전 WET팀의 부팀장인 승현이형으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다음주 수요일(26일) 예정된 진미식품 인터뷰의 예비 인터뷰어가 되었으니 관련 조사와 질문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나서 '내가 진미 식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검색해보니 진미식품에 대한 기사가 여럿 나왔다. 그리고 나서 부엌에서 진미 브랜드를 가진 상품이 있나 찾아보았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진미를 접할 수 없었다. 다른 이름을 가진 고추장 등이 부엌에 있었다. 그 날 나는 '진미 식품이 정말 유명한 장류 기업이 맞아?' 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날 식료품을 사려고 슈퍼에 들렸을 때, 라면 코너 옆 고추장 코너에서 진미 춘장을 발견했다. 진미 춘장? 진미 식품? 이라는 생각과 함께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2000년도 말부터 2002년도 초까지 나와 우리 가족은 중국에서 생활 했었다. 문화도 음식도 다른 중국에서 생활 할 때, 우리집 부엌에서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고 그 춘장과 관련된 추억도 있었다.
시장에서 손질(?) 해온 생선이 도마에서 펄떡 거려서 도망쳤던 에피소드가 있는가하면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다음날 점심에 짜장밥이 나온 날도 있었다.
이번 인터뷰 대상은 의외로 내게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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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미식품 송상문 대표이사 인터뷰 준비과정
글 : 기업가정신 세계일주, 김진영
“현상 유지로는 부족해요. 무엇인가 획기적인 성공을 해내지 못한다면 경영 2, 3세들은 주어진 혜택을
이용하고 있다는 평가뿐이에요!.”
진미식품 송상문 대표를 만나고 난 후 계속 머리 속에서 맴돌던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건실한 중소기업의 손자, 아들로 태어나서 가업을 계승했으니 별 다른 어려움은 없으시겠구나’ 라는
건방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표님과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고민과 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망각하고 겉으로만 보여지는 단편적인 사실을
통해 대표님을 만나기 전부터 고정관념을 갖게 된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졌다.
물론 굴지의 대기업 자제는 아니지만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대표님은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혜택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보이지 않는 책임과 의무, 그리고 사명감은 흔히들 사람들이 ‘혜택’에만 관심을 가지려고 할 때 분명히 그 이면에 숨어있는, 대표님을
항상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존재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기에 대표님께서 ‘가업을
이어나가야겠다’라는 선택을 하신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
왜 본인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획기적인 성공’이라는 부담을
안고 가업을 이어나가고 계신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분명 식품업계도 변화하고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시장은 대기업이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세 살짜리 어린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광고 CM송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굴지의 대기업들의 견제와 비슷한 규모의 중소기업 업체들간의 경쟁 등 송상문 대표님이
항상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셔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것만은 분명한 사실 같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알고 계시면서도 대를 이어 회사를 경영하고 계시며 이전의 경영 방침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들도 많이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변화하는 세상과 함께 발 맞추려고 하는 이런 모습들을 통해 진미식품이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소비자들의 식탁에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물론 대표님의 조부님, 아버님께서도 본인들만의 훌륭한 경영 방침과 스타일을 통해 진미식품을 건실한 기업을 키우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시기 적절한 변화와 개혁은 그 어떤 회사 입장에서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며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송상문 대표님은 이런 시대의 흐름을 읽고 진미식품을 위해, 그리고
전통 장맛을 지키려고 애쓰셨던 조부님, 아버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뜻을 이어 받고자 어렵지만 보람된
길을 가기 위한 선택을 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겁니다.”
대표님이 가장 멋있어 보이는 순간이었다. 대표님의 이런 건강한 마음가짐이 지금까지 진미식품을 이어가고 있는 에너지일 것이고 앞으로 진미를 이끌어가는
견인차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진미식품에 한가지 바라고 싶은 점은 지금처럼 소신을
가진 회사로 운영되길 바란다는 점이다.
일례로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했을 때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음식’을 좀처럼 먹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아 그만큼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나라 미국에도 아직까지
한국음식은 ‘생소한’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시골길을 달려가다가도 일본음식점, 중국음식점은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데, 한국 음식점은 대도시 이외는 찾아보기가 힘들고, 또한
한국 음식점이라고 해서 방문을 해 보아도 거의 미국인들의 입맛에 더 익숙한 일본요리나 중국요리처럼 만든 정체불명의 한국음식이 대부분이다.
물론 세계인의 입맛에 맞춰 한식을 변화시킨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이처럼 정체성을 잃어가는 음식은 결국 그
고유의 생각이나 발상마저 잊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진미식품도 이제는 국내에서 대기업과 벌이는 치열한
싸움보다는 전 세계로 눈을 돌리고 더 큰 시장인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는 시기가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그럼
그 때 진미식품만큼은 지금까지 우리의 장맛을 지키기 위해 3대가 발 뻗고 나선 것처럼 우리의 고유한
맛을 잃지 않고 지켜내면서 동시에 세계인의 마음까지 훔칠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